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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용중인 달력의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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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26 23:26 조회 1,204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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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그레고리력은 원래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개정한 역법인 율리우스력에서 비롯되었다.

율리우스력이 정확하지 않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율리우스력이 태어난 지 1500년 뒤에 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는 율리우스력을

폐지하고 보다 정확한 그레고리력을 도입하였다.


율리우스력도 현재의 그레고리력처럼 1년을 12개월, 365일로 계산하되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도는 데 365일에 6시간(즉, 4분의 1일)을

추가해 계산하여 4년에 한 번씩 윤년을 두고 있다. 그러나 로마인들은 지구가 태양을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이 365일 6시간이 아니라

그보다 11분 14초 더 길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였다. 그래서 16세기가 되면서 한 해에 674초씩의 오차가 축척되어 실제 날짜와 달력의 날짜가

무려 14일이나 차이가 났다. 그래서 춘분이 3월 25일이 아니라 3월 11일이 되었던 것이다. 신이 가장 두려운 존재였던 중세 시대에 종교적인

행사가 엉뚱한 날에 치러진다는 것은 결코 작지 않은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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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고리우스 13세>


1582년 10월 4일,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는 제 19차 바티칸 공의회를 통해 당시 3월 11일이던 춘분을 서기 325년

니케아 공의회 시대의 춘분 날짜인 3월 21일이 되도록 역법을 개정하였다. 바티칸 공의회는 그래도 나타날 수 있는 오차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100으로 나누어지는 해중에서도 400으로 나누어지는 해가 아니면 윤년이 아니라고 규정하였다.

이 새로운 역법은 그레고리우스 13세의 이름을 따서 그레고리력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이렇게 해서 라마 교황의 포고령을 다르던 나라에서는, 1582년 10월 4일을 기점으로 달력의 날짜가 열흘씩 앞당겨져 10월 4일의 다음날은

10월 15일이 되었고, 1582년 10월 4일이 율리우스력의 마지막 날로 남게 되었다. 그러나 신교를 채택하던 국가들은 그 뒤로도 수백 년 동안

율리우스력을 고집하였따. 영국이 그레고리력을 채택하였던 1752년에는 그레고리력과 율리우스력은 11일의 날짜 차이가 났고, 의회에서

9월 2일의 다음날이 9월 14일이 될 것이라고 발표하자 사람들은 "우리에게 11일을 돌려달라!"고 요구하면서 강력히 반발하였다.

서구에서는 그리스가 1923년 가장 늦게 그레고리력을 채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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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이 늘 한 해의 마지막은 아니었다. 로마 사람들은 3월 25일의 해가 지는 시점을 한 해가 끝나고 이듬해가 시작되는 순간이라고 생각하였다.

이때 12월은 10번째 달이었고 (라틴어 기원으로 볼 때 'December'는 '10'이라는 뜻이다.) 2월이 마지막 달이었다. 중세에는 유럽의 많은 

국가들이 이런 사례를 따라 신년 축제를 3월 25일에 하였다. 그러나 그레고리력을 채택하면서 한 해의 시작을 1월 1일로 정하였고, 이렇게

해서 '10'을 의미하는 달의 이름이 기이하게 12번째 달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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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리우스 카이사르>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그 아름답기로 소문난 이집트의 여왕 클레오파트라와 정략적(?) 결혼을 했다고 한다.

카이사르의 신임을 얻어 이집트의 정치기반을 공고히 하길 원했던 클레오파트라는 율리우스의 신임을 얻고자 

스스로를 선물로 바쳤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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